글쓰기(Writing

기억을 부르는 소리

olivi 2021. 7. 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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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른 봄, 나는 시도를 넘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집이 도심의 변두리에 있어서 집주변은 아파트와 주택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베란다 뒤쪽에는 시골 밭과 화훼단지가 펼쳐지고, 옆으로는 기찻길이, 위로는 비행기길이 나 있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아파트 가격을 붙잡고자 정부가 내 놓은 부동산 정책으로 전월세가 많아진 판국에 all 전셋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부랴부랴 도망치듯 떠나온 나에게 선택 권한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나는 이사 온 날 줄줄이 이은 탱크기차, 다양한 음속을 달리는 비행기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 중 나를 환영해주지 않은 것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투기였다. 몸 속 깊은 단전에서 울려나오는 전투기의 목소리는 오롯이 본인 혼자만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듯 콧대 높아 외롭고도 쓸쓸한 자기울림이었다.

‘받아들이자.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환영받은 존재로 때론 환영 받지 못한 존재로 내가 그렇게 살아왔듯, 이들도 내 삶에 그렇게 살아가겠지. 그 자체로 받아들이자. 사랑하면 더 좋고.’

 

4월, 전투기 포효소리에 낮에도 문을 못 열던 어느 날, 따뜻한 햇살 빼꼼하니 들어오라고 작은 방 문을 살짝 열었다. 그랬더니 봄비도 살짝, 얼굴 들이밀다 가고 송진도 날아와 앉아 쉬었다.

이른 아침의 땀방울은 대지의 황토빛을 초록빛으로 바꾸고 있었다. 이십대에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밤마다 귀마개를 끼고 자는 습관이 생긴 나는 이제 낮에도 귀마개와 함께하게 되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저녁에 거실창문을 활짝 열고 풀 연기 냄새, 거름똥 냄새, 동네 개들 짖어대는 소리, 낭만 실은 기차소리까지 한껏 집으로 맞아 들였다.

 

이때부터였나? 잠자리에 들 때면 우리 집 뒷집 누렁이가 큰 소리로 짖어대던 게. '무슨 일이 있어 저 아이만 이리 시끄럽게 군다지.' 같은 생각만 반복하다가 잠이 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당연한 듯 귀마개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누렁이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 지도 몇 주가 흘렀다.

 

6월, 망종(芒種) 때를 앞뒤로 하여 비가 오다가다 했다. 매일 밤이 개굴개굴 소리로 기분 좋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존재감이 없어진 뒷집 누렁이가 갑자기 슬픈 하울링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서럽게 흐느끼는 지 잠자리를 박차고 몇 번을 베란다 창문 앞에 서성였다. 끊길 듯 끊기지 않는 아리랑 언덕을 넘나드는 날들이었다. ‘며칠 뒤면 팔려가나? 친구 개가 죽었나? 왜 밤 10시 반 언저리만 되면 운다지?’ 답을 모르는 수많은 질문들만 밤하늘에 희뿌옇게 박혀 들어갔다. 어느 날은 주위 친구 개들도 걱정이 되는 지 위로해 준다는 듯 ‘왈왈, 월월, 멍멍’ 소리쳤다. 그날 밤은 한 시간도 넘게 뒤척이다 잠이 들었던 거 같다.

 

한 맺힌 누렁이의 하울링이 멈춘 것은 7월 장마가 시작되면서였다. ‘누렁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시 팔려간 걸까? 누렁이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만의 애도의 시간이 끝난 것인가?’ 새로움이 선사하는 호기심은 사람을 상상의 나래로 인도하지만 따라 나서지 않는 자에게 그 선물은 영원히 풀리지 않은 보따리가 되고 만다. 반짝이는 선물보다 외려 내 곁을 훌쩍 떠나 버린 불편에 감사하며 나는 누렁이를 잊어갔다. ‘망각은 신의 인간에 대한 배려’라며.

 

오늘밤 불현 듯, 미로 같은 귓속뼈를 빙글빙글 비행하다 귀마개로 꽉 막힌 동굴 사이를 비집고 나의 소중한 달팽이관을 찌르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끼오~.’ 저 꼬꼬댁은 어느 댁이기에 이리도 친절히 새벽 내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가. ‘언제나 나를 잊지 말라’는 신의 뜻은 이렇듯 불시에 찾아오는 것.

 

‘망각과 기억’의 뫼비우스 띠 위를 나는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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