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GrowthDiary

나의 소사회(小社會)

olivi 2021. 7. 1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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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결혼을 하면 가정에 매몰된다던가?’ 지금이 조선시대냐, 양성평등하고 맞벌이가 당연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이 무슨 고리타분한 생각이냐 물으실 것 같다. 전형적인 A형이자 조선의 여인인 내 앞에 사직(辭職)이 있다. 그러자니 위의 말은 나를 더욱더 ‘내 자신과 가정’으로 고립시킨다. 그렇다. 나의 사회는 현 시대의 또래 다른 사람에 비해 작다. 지금의 나의 사회는 과거의 나에 비해서도 작아졌다.

그리하여 내 주변에는 세 가정이 있다. 첫 번째는 육체적인 나를 있게 해 준 가정이고, 두 번째는 인격적인 나를 형성해 가는 가정이고, 세 번째는 나의 조력자를 있게 해준 가정이다. 이 세 가정은 겉보기에는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향력 측면에서는 벤 다이어그램의 교집합처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가정과 함께 본질적인 ‘나’로 성장해 가고 있다

벤 다이어그램


내가 나로 성장함에 있어서, 남편과 내가 만든 한 사회가 성장함에 있어서 이 사회와 다른 사회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 걸까? 다섯 개의 고리가 얽힌 올림픽 심벌처럼 모든 사회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우리 모두의 관계는 조화로울 것인가? YES라고 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너무 이상적이고 정형적인 모델이라 불완전한 인간 세상에 오히려 불가능한 정답 같다.

그렇다. 내 주변에는 한없이 퍼주기만 하는 사람과 한없이 업히려고만 하는 사람과 한없이 지탱해주기만 하는 사람과 한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짤뚱 길뚱 길이 다른 작대기로 찔러가며 내게 추파를 던진다. 한쪽은 엎드려 받느라 정신없고 다른 쪽은 찔려서 정신없다. 독립심 강했던 나도 기댈 곳은 남편뿐이라며 한없이 기댔더니 어느새 제 없어지는 지도 모르고 지구의 그림자가 가리기만을 기다리는 바보 달이 되었다. 나와 소사회의 관계는 아침에 보니 크고 작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몬드리안의 추상화 같다가 저녁에 보니 그로테스크한 피카소의 추상화가 되었다. 괜찮다. 19세기의 전통미술에서는 신경쇠약한 자들의 스케치로 취급될 것 같은 추상화가 지금은 당당히 하나의 화풍으로 인정받지 않는가. 정물화나 풍경화보다 더 현실을 사실적으로 나타내는 게 추상화인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

작가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고 했다. 사회과학자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률을 낮추는 요인을 사회와 개인 관계에서 안정감을 주는 ‘통제, 연대, 통합’이라고 보았다. IMF 이후의 극도로 치닫는 신자본주의, 개인주의, 높은 자살률, 넓은 선택의 폭, 높은 자율성이 주는 혼돈의 시대에 여러 책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교류, 연결’이 답이라고 말한다.

나의 소사회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좀 더 커질 필요가 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 곁으로 가라’고 했다. 닮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곁에 가야한다. 나의 내면을 둘러보는 것 만큼 주위를 둘러보고 관심을 가지고 함께 참여해야한다. 이쯤해서 미국의 문명비평가이자 신정통주의 신학의 지도자라는 라인홀트 니부어(Reinhold Niebuhr)의 기도 대목이 생각난다. ‘신이시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안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항상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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