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GrowthDiary

<기억의 오류, 엄마>

olivi 2021. 3. 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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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날 때부터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던 존재. 항상 그 자리에 있어 마치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 어렸을 적 엄마는 날씬했다고 한다. 포근한 풍채는 나를 낳으면서 변했다는 데, 나는 ‘원래 엄마는 뚱뚱한 사람이었다’는 것처럼 엄마하면 으레 뚱뚱한 모습을 떠올린다. 엄마가 음식을 많이 드셔서 그렇게 기억하는 게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먹는 거 하니 떠오르는 추억의 음식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짜장면이다. 내가 초등학생 저학년 때 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섬에서 살았다. 중국집과 목욕탕이 없는 시골마을에서 살았다. 명절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댁에 가야해서 배를 타고 육지로 나오면 시외버스로 갈아타기 전 혹은 시외버스에서 내린 후 터미널 앞에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나는 당시 짜장면을 한 그릇 다 먹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내 짜장면을 뺏어먹는다고 화를 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욕심 많은 나 때문에 불은 짜장면을 먹어야했다. 1학년 추석 때로 기억하는 데 그 이전에는 몇 번을 그랬을지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 보면 먹성 좋은 엄마에게 짜장면 한 그릇도 엄마 배를 채우기에 부족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본인의 것은 주문하지 않으셨던 게 참 마음이 아프다.

두 번째는 장 음식이다. 없는 살림 때문에 엄마는 주로 파장 때면 나를 데리고 장에 나갔다. 가끔이었지만 장날 때만 먹을 수 있었던 그 달달한 팥죽 한 그릇을 엄마랑 맛있게 나눠먹었던 기억이 난다. 파장 때는 시장아주머니 아저씨께서 일찍 댁에 들어가셔야 돼서 시들해진 물건들이나 상처가 난 것들을 싸게 내주셨다. 엄마는 항상 그런 물건을 좋아하셨다. 싸게 산 과일도 좋은 것은 자식에게 주고 당신은 안 좋은 것만 골라 드셨다. 과일정도는 내가 깎을 수 있게 된 때부터는 좋은 것은 오빠에게 줬고 안 좋은 것은 엄마랑 내가 나눠 먹었다. 양이 안차면 좋은 것도 먹었지만 주로 상태가 안 좋은 게 더 많았다.

 

엄마는 항상 바쁘셨다. 내가 초등학생 저학년 때는 어머니께서 밭일을 하셨다. 고학년이 됐을 때 우리 집은 육지로 이사를 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밭일이 아닌 회사에 나가 돈을 버셨다. 그래서 엄마는 그때부터 나의 교내외 행사에 참석해 주신 적이 없으시다. 아니 다시 정정하자면 행사가 끝날 때 참석해 주셨다.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님 사이에서 나는 애써 괜찮은 척을 했다. 행사가 끝날 때 오신 엄마는 다른 친구의 꽃다발을 빌려 나와 사진을 찍으셨다. 그땐 참 창피하고 서운해서 엄마한테 화내며 운적도 많았다. 그땐 잘 몰랐다. 돈이 웬 수인 걸.

대학생 때는 ‘차라리 졸업식에 오시질 마시지..’ 교내에 떨어진 꽃이 많다며 엄마가 꽃들과 풀들로 손수 만드신 꽃다발을 내게 내미셨다.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 땐 잘 알았다. 돈이 웬 수란 것을.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내가 대학생 때 우리 집은 악착같이 돈을 번 엄마 덕분에 살림이 나아지고 있었고, 나 역시 쓸데없이 꽃다발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 탐탐치 않게 생각할 정도로 컸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엄마는 내게 참 기억을 많이도 심어주셨다.

 

그 뒤로 내게 심겨진 엄마는 평소 성격이 다른 아빠와의 싸움으로 인해 감정적인 상태인 얼굴로만 기억된다. 해진 갈색바람에 여름날의 젊음도 함께 날려 보내고 울긋불긋 갱년기 꽃도 피었다 지고. 분노, 억울, 슬픔, 체념, 위안, 욕심, 피해의식 등 인간의 어두운 감정도 세월의 터널을 따라 지나왔다. 엄마는 많이 늙으셨고 하지만 여전히 정정하시다.

 

어쩌면 이 모든 기억이 오류투성 일지 모른다. 슬펐던 기억만 남게 된 내 머릿속에서 기억의 조작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엄마와의 기억 중 가장 최근의 기억은 행복한 기억이다.

올해 구정 때 엄마와 각자의 자기계발에 대해 3일 밤을 자정까지 이야기 나눴다. 끼니만 겨우 챙겨먹으며 열성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며칠을 같이 고민하다보니 내가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엄마와 닮았다는 말이 참 듣기 싫었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고, 사람은 단점만 있지 않고 장점도 있다는 당연한 이 사실을 이제서야 엄마에게 적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긍정적이고 넓어지길 바라는 것만큼 내 가장 가까운 소중한 사람에 대한 나의 시각이 먼저 긍정적이고 깊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