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Rememberance

<선택하는 순간, 운명이 된다> : 핀란드 여행 단상

olivi 2021. 7. 16. 18:37
728x90
핀란드 로바니에미에서 온 엽서(2020.1.12.)


“띵동~”
평소 자주 울리지 않은 현관문 벨이 울렸다. ‘누구지? 오늘은 약속이 없는 날인데...’ J가 부랴부랴 옷을 입다가 멈칫, 거치던 카디건을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문 앞에 나서려니 영어울렁증이 도지는 건지, 귀찮은 건지 그녀는 ‘사람 없는 척을 하기’로 했다. 지그시 슬리퍼 앞코부터 발을 내디디자 할 수 없이 끌려간다는 듯 그녀의 몸이 앞으로 뒤따랐다.

“띵동~”
다시 한번 벨이 울렸다. 그 순간, J는 걷던 걸음도 허공을 휘젓던 손도 들이키던 숨도 멈췄다. 갑자기 ‘윙~’ 냉장고 냉각기 돌아가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멈췄던 들숨을 몰아쉬고 문 넘어 서 있을 컨시어지를 투시하듯 노려보았다. 안쪽에 위치한 그녀의 집에서 엘리베이터까지는 빨라도 10초. 그녀는 속으로 10초를 세고 문으로 다가가 도어뷰 렌즈로 복도를 보았다. J는 아무도 보이지 않은 걸 확인하고서야 안심하며 문을 열었다.

“달그락.”
집안보다 차가운 공기가 문틈을 비집고 먼저 그녀 뺨에 스쳐 들어왔다. J가 문을 열었다. 복도의 주광색 불빛은 모든 색을 산란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빛을 피해 눈을 깔았다. 현관문 앞 초록 발 매트 위에 엽서 두 장이 보였다. 한 달 반 전, 핀란드 로바니에미에서 J부부가 서로에게 쓴 엽서였다.

‘앗, 드디어 도착했구나!’ 굳었던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2주가 걸린다던 국제엽서는 한 달이 넘어서도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도중에 사라졌나보다’ 하고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 도착한 것이다.
J는 기쁜 마음에 엽서를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그녀의 남편이 쓴 엽서를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그녀의 핀란드 여행은 또 다시 시작되었다. 남편의 엽서에는 J에 대한 고마움이 적혀있었다. 서로 네 덕분이라며 감사함에 휩싸인 여행이었다. 해외여행에서 소소한 다툼마저 없었던 첫 여행이었다.

핀란드는 그들이 일 년 전에 가 봤던 여행지였다. 그래서 J는 이번 겨울여행을 준비하면서 똑같은 나라로 가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북유럽의 나라가 이렇게 많은데 하필 똑같은 나라라니...’ 그러나 두 번 찾은 핀란드에서 그들은 그들의 교집합이 그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눈, 바람, ‘추위’를 사랑한 남편, 나무, 꽃, ‘숲’을 사랑한 J에게 라플란드, 레이크랜드인 핀란드는 서로의 다름을 포용해주는 장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북유럽 특유의 검소함은 그들이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잘 느끼도록 해주었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에 적합했다. 살다보면 인과가 바뀌는 걸 목도하는 순간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그것을 택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에게 그것은 특별해진다. 원래 특별했던 것처럼.

J는 주말에만 오는 남편에게 사진과 함께 엽서가 잘 도착했음을 알렸다. 그녀는 남편에게 고마웠고 그녀의 삶에 감사했다.

보낸 엽서는 늦었지만 잘 도착했다. 행복은 또 다른 행복으로 돌아왔다. 와야 할 것은 필시 오게 되어있었다. 운명이었다. 그들의 만남처럼. 그들의 핀란드처럼.

핀란드 로바니에미(2019.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