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BookReview

기로에 서 있는 당신, 둘다 선택하라(feat.양귀자 《모순》)

olivi 2021. 8. 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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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바람에 서가 위에 꽃뱀이 꿈틀대고 있었다.

어딘가에 머리를 쳐박고 꼬리만 그렇게 날렵한 춤동작을 선보이고 있었다.

‘꽃뱀을 붙잡은 것은 무엇일까?’ 눈동자가 뱀 등허리를 훑고 내려갔다.

 

무심히 가슴에 떨어지는 글자 두 개가 있다.

툭툭. 퍼즐은 완성되었다.

 

‘모순’

 

 

몇 주 전에 이산문학을 접하려고 금희소설을 읽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서야 현대소설은 피하고 있다. 유명한 고전소설을 먼저 읽어보고 내 것으로 체화 한 뒤 현대소설(현대수필)을 읽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게 된 건... 운명이었다.

 

‘인생은 아이러니 투성’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이 책이 내 삶을 대변할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론 이제 지겨울 만도 한 주제인데, 난 아직도 이 굴레에 빠져나오질 못했다. 많이 파헤쳐 보라는 하늘의 뜻이겠거니 생각하며 책을 빌려왔다.

 

고전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공감에 빠져 네 수도꼭지를 휴지로 막아가며 읽어 내려갔다.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것도 아닌 데 이런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소설 속 주인공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 가는 가족공동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모습은 다르지만 나 역시 불완전한 가족공동체 안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글을 씀에 있어서 가장 크게 고려할 점이 ‘독자와의 공감대 형성’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 현대소설/ 현대수필은 현대인에게 사랑받기에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독자가 글을 읽는 이유는 함께 고민하고 위로받기 위함이다. 한때 너무 어려운 말들로 수필을 써 내려간 나를 반성하게 된다. ‘어려운 어휘가 주는 위화감은 외려 독자의 마음을 닫아버리려 하겠구나.’ 싶다.

 

그럼 쉽고 보편적인 어휘로 너도 나도 느끼는 그 감정을 참신한 표현으로 나타내는 게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다. 고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현대소설에서 마음에 와 닿는 표현들이 참 많았다. 얼추 연습장 다섯 페이지가 된다.

마음을 울리는 신선한 표현은 소설뿐 아니라 시를 읽다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시집을 읽고 글을 써보고 있다. 하나의 사물을 정해 놓고 묘사 연습을 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책을 읽다보면 중간 중간에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나온다. 집전화기를 들고 화장실 앞에 놔둔다던지,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를 건다든지, 다른 지역의 맛집을 책을 보고 찾아본다는 말을 보고 책 맨 뒷장을 뒤적였다.

이 소설은 1998년에 첫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현대소설을 쓴다면 현 세태를 바로 파악하고 글로 구현해 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도 연결해 놓지 않았고 인터넷으로 내가 원하는 정보만 취할 수 있어서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바로 파악하기 어렵다. 내 삶의 정보 편향성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부터 해 봐야겠다.

 

책은 일란성 쌍둥이인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대조로 보여주며 모순투성이인 우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이모의 평탄한 삶은 주인공 안진진의 가족의 치열한 삶과 대비해보면 이 시대가 부러워하는 삶이다. 하지만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을 이모는 스스로 끝내기로 한다.

너무도 이해되는 이모의 마음이다. 남편은 내가 바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본인이 일을 그만 두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모처럼 평탄한 삶을 살아왔나? 나는 크고 작은 결핍들에 둘러싸여있다. 혹자는 그냥 그것과 분리되어 살아가면 된다고 하지만 부모자식관의 관계를 어떻게 무 자르듯 그렇게 깔끔하게 자를 수 있겠는가? 혹자는 그냥 남들처럼 야근하고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깟 돈이야 내 목숨보다 소중할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당연 결론 부분이다. 이모의 죽음을 보고 주인공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와 같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김장우를 버리고 외삼촌과 같은 계획적이어서 지루한 나영규를 선택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모의 인생이 행복이었으나 본인에게는 불행인 삶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불행해 보이는 어머니의 인생은 이모가 보기에는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인생이 ‘어떤 종류의 행복과 불행을 선택할까’의 문제라면 주인공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선택하기로 한다. 실수가 되풀이되더라고 그것이 인생이라며...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라는 역설적인 말을 남기고 책을 끝낸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선택해 보지 않으면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해 알 수 없을 길 위에서의 느낌을 주인공은 선택한 것이다.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어간다면 숫자와의 스트레스와 공부를 계속해가며 저녁이 없는 바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남편에게 힘듦을 하소연할 것이고 계속된 인생타령을 끝내지 못하고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것이다. 회사 일을 말하지 않아야만 허울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이어서 원하는 것을 먹고 여행하며 좋은 집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 글을 쓰는 길을 걸어간다면, 내 평생의 인생타령은 글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며 생기는 어려운 점이야 남편에게 또 하소연 할 것이다. 좋은 글을 쓸 자신감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평생을 갈구의 삶을 살지 모른다. 집안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모든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 현실의 벽 앞에 무릎을 꿇고 글 쓰는 길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기로에 서있다. 인생의 태엽을 앞뒤로 돌릴 수만 있다면 다른 길로 쉽게 들어 설 수 있을 텐데... 안전한 길을 걸어가라 주위사람들의 조언이 들리고,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용기에 박수를 치는 성공한 자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나는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디디고 새로운 감각에 몸을 맡긴 채 허공에 매달린 줄을 타 볼 것인가?

발을 내디디는 순간 허공을 즐기는 어름사니가 내 천직이 될 줄 누가 알 것인가? 당연히 지금까지 땅 위에서 살아온 자가 허공에서 첫발을 자신있게 내딛기는 어렵다. 무수히 땅으로 떨어지는 연습을 할 것이다. 그때마다 계속 연습할 수 있도록 채찍질해주고 나를 잡아줄 사람은 누구일까? 의지가 약한 나는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

 

글쓰기로만 밥벌이 해먹고 살수 없다고 하니 나는 두 길을 함께 걸어가야만 하는 운명이다. 일을 하고 틈틈이 천천히 글을 써 나가는 것만이 답이다. 그 ‘일’을 예전의 그 일로 할 것인지, 새로운 일로 할 것인지가 또 다른 문제로다.

 

모순투성이 인생은 둘다 놓치고 싶지 않거든 뭐든 열심히 하라고 채직찔 한다. '둘다 선택하면 이도저도 아닌 삶이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외려 내가 하려는 행동이 둘다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역설적인 빨간 경고가 예기치 않은 순간 뒤통수에 날아들어온다.

 

세상은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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