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GrowthDiary

<이 세계에서 빠져나와 다른 세계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나를 바라보다>

olivi 2021. 2. 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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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기들과의 단체 카톡방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은 지 한 달이 지나간다.

가상공간에서도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럼에도 그 힘은 대단했다. 물리적으로 나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 주는 것이었고, 정신적으로 어쩔 때는 든든한 내 백(back)이 되기도 했다.

활동을 하지 않으니 내게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명무실한 존재, 인간의 꼬리뼈 정도의 위치에 있다 말할 수 있겠다. 쇼파, 매트, 의자, 침대 등으로 존재감을 모르고 살다가 오랜만에 방바닥에 앉았더니 느껴지는 존재감처럼 그냥 지나치던 카톡 미확인 숫자가 오늘따라 크게 느껴졌다. 1165.

 

 

어릴 적 내가 살았던 집에는 큰방 문과 작은방 문을 활짝 열면 양문이 부딪치는 공간이 있었다. 숨을 공간이 필요하면 잘못 제작된 문과 문 사이로 나는 피신을 하곤 했다. 하루는 그 공간에서 엄마 몰래 부엌 찬장에 있는 프리마를 퍼먹었던 적이 있다. 작은방에서 의자를 끌고 나와 찬장에 있는 프리마를 손에 잡았을 때의 긴장감. 커서 생각해보니 프리마 속에서 어린 나는 분유 맛을 그리워했던 거 같다.

왠지 모를 묘한 긴장감을 안고 카톡방에 들어갔다. 몇몇 글을 잠시 읽다 '에잇'하고 나오는데 이 맛은 뭐지? (궁금해 honey?) 분유 맛이었다.

 

 

 

어릴 적 먹었던 그 프리마

 

 

싸구려 감정에 압도되지 말라며 재빨리 PC를 켜고, 베이글 한 입 베어 물고 아메리카노 한 모금 홀짝이며 전자책을 읽어 내려간다. 인터넷카페 속 댓글을 읽고 대댓글을 다려는 순간 이 세계에서 빠져나와 다른 세계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는 그 순간.

 

이것이 소속감인가.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로헴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어 설명을 한다. 한 단계씩 우선순위를 갖는다는 매슬로우 욕구이론은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고 본인도 죽기 전에 피라미드가 뒤집어져야 옳았다고 그 한계를 말하지만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 동기를 설명해 주는 데에 여전히 큰 의의를 지닌다.

나에게 소속은 자아실현(어떻게 살 것인가)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도구이고 소속감은 자존감과 마찬가지로 그 모험의 과정 속 느껴지는 감정 중 하나이다. 그러니 역피라미드 모형이 현사회에는 더 설득력 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저번 주말 남편과 광장이 있는 공원을 산책했을 때 남편은 '광장'의 의미를 내게 물었다.

‘한 평 남짓한 몸뚱아리를 늘였다 줄였다.. 타인과 나의 공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곳, 백만 평 펼쳐진 시야는 원한다면 허락 없이 모조리 공유되고 소유할 수 있는 곳(물론 눈으로만).’

도시의 광장의 의미, 올리비

과거보다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있는 현재를 보면, 개인의 사적인 시간과 공간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도시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출산율은 저하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공간은 모두 부족하다. 그 가운데에 광장은 그 부족한 시공간을 메울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의 소속이라는 것도 광장과 그 원리가 비슷하다. 개인의 시공간은 줄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소속되기 전에는 없었던 그 속에서의 시공간은 더 넓어진다. 또한 어느 곳에 속해 있는 안정감을 주지만 고립감, 소외감은 떨쳐 낼 수 없다. 군중 속의 외로움은 어디에나 있으니...

 

내가 지금 이 시기에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의 느낌은 철저한 고립감, 우울함이었을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시간에 갇혀 책 사이로 과거의 자신를 바라보는 그 감정. 다행히도 나는 빛을 찾았다. 그 빛을 따라 걸어가 볼 것이다.

"다시 아기가 될 수 없다면 느껴보지 못할 그리운 맛. 어릴 적 엄마 품처럼 안전하고 포근한 맛.
괜찮아요. 요즘은 성인대상 분유도 있답니다.”

올리비

 

예전 유명한 tv프로그램 알쓸신잡3 에서도 도시의 광장이 주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게 있어 링크를 남깁니다. 참고하세요.

[#알쓸신잡3] '우리나라는 개인을 참 무시해요' 유시민의 개인주의 필요 선언? 181019 EP5 #09 - YouTube

 

 

#olivirain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