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BookReview

중고등독서논술: 슬픈듯 슬프지않은,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

olivi 2021. 3. 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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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저자사무엘 베케트출판문예출판사발매2010.04.20.

걷기 운동을 할 때 나는 별일이 없다면 팟캐스트를 듣는다. 주로 팟빵에서 독서와 인생에 관한 에피소드들 위주의 콘텐츠를 구독한다. 그 중 <독서스텔라>라는 방송에서는 2주에 한 권 씩 책을 선정하여 1) 저자, 2) 줄거리 그리고 3) 논의해 보면 좋을 내용에 대하여 소개해 주고 진행자 세 분이 추천/비추천 투표를 한다. 여러 좋은 책들이 많았는데 그 중 고전을 읽고 싶어서 살펴보다가 가장 먼저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책이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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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스텔라

우주로 가는 독서스텔라! 이슬 펭숙 냠냠과 함께 책으로 유익하게, 유쾌하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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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추천을 받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좀 더 쉽게 읽기 위한다면 <독서스텔라> 방송 추천)


이 책은 희곡이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아주 오랜만에 접하는 것인데다 발음하기 어려운 낯선 외국인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주인공이 불쑥 불쑥 삶의 부조리에 대해 내뱉고 때론 같은 말을 주고받아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읽어 내려가기 힘들었다.
읽는 내내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탈춤극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해학과 풍자 때문이었다. 에스트라공이 자꾸 장화를 벗으려고 노력하는 장면,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자신들의 모자와 럭키가 놓고 간 모자를 계속 번갈아가며 써보는 장면, 항상 같은 곳에 와서 고도를 기다리지만 전날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 못하는 에스트라공의 모습, 장님이 되어 등장한 포조가 넘어져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도 신속한 대처보다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고도를 기다리기 때문에 그 장소를 못 떠나는 두 주인공의 모습과 계속해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을 잊어버리는 에스트라공의 모습 등에서 해학미를 느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탈춤극이 그 시대의 양반, 지주 등 지배층의 행태에 대해 풍자한 것이라면 이 극은 인생의 부조리에 대해 풍자하고 있어 좀 더 포괄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또한 탈춤극은 주로 탈과 과장된 몸짓을 사용하여 계급사회의 부조리, 피지배계층의 恨(한)을 좀 더 가볍게 다루는 등 해학적 요소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극은 세계에 대한 부조리와 그 속에서 의미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인간의 고통을 좀 더 무겁게 다룬다.


고도(Godot). 두 주인공이 기다리는 고도라는 인물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일까.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을 보고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나.
<독서스텔라>에서 냠냠이라는 분은 고도가 ‘신’이라는 뜻의 영어의 God과 ‘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어미 –ot의 합성어라고 말한다. ‘신+신.’ 나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은 신의 심판을 기다리는 행위로 인지했다. 두 주인공은 우리가 어떤 입장에 있는지 바로 알 때까지 그를 기다려보자고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지만 나중에 자신들의 입장, 권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는 신의 심판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간의 수동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당연히 인간은 신의 심판 앞에, 죽음 앞에 무어라 의견을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고도에게 매여있는 그들의 삶의 방식인 것이다. 내일, 내일이라고 말하며 항상 똑같은 장소, 한 그루 서 있는 나무 아래에 와서 오지 않는 신을 기다리는 것이다. 죽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발이 부어 벗기 힘든 장화를 신었다 벗었다 하는 에스트라공의 행위와 자꾸만 모자 안을 들여다보고 모자 꼭대기를 툭툭치는 블라디미르의 행위, 갑갑하고 가렵다는 모자를 항상 쓰고 서로의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는 반복적 행위에서 단편화된 매여 있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 보인다. 너무 단조로운 틀에 박힌 삶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자가 던진 질문이다. 저번 시간에 읽어봤듯 반복된 일상이 습관이 되고 좋은 습관은 좋은 삶을 만들지만 언제까지 이 삶을 살아가야하는 지 실존에 대한 저자의 질문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고찰, 실존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대게 전후문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물음이다. 내 마음은 항상 전쟁 중이니 실존에 대해 고민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지배계층 포조와 피지배계층 노예 럭키의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가.
럭키를 부를 때면 채찍질과 목에 상처가 나 고름이 나지만 계속 목에 맨 끈을 잡아당기는 포조의 모습에서 인간성의 말살을 엿보았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무거운 가방과 접어두는 걸상, 소풍용 바구니를 땅에 내려놓지 않고 서있는 럭키의 모습에서 동물보다 못한 노예의 삶을 보았다. 더 악랄한 주인을 만나지 않기 위한 현 주인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생각을 말하라는 명령에까지 언어적 논리의 부조리를 보임에도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모습에서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말살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2막에서 포조는 장님이 되어 나타나지만 럭키는 장님이 된 주인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목에 끈을 매단 채 우둔하게 주인의 명령에 따른다. 변함이 없는 그들의 관계는 지배층에 어려움이 덮쳐도 쉽사리 바뀔 수 없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현실적 굴레를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시 프랑스 저항군으로 활동한 저자가 직접 겪은 인간성의 말살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전쟁은 신 앞에 인간이 한낱 가벼운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며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어렸을 적 땅 위에 기어다니는 개미들을 아무 생각 없이 죽여본 적 있다. 그 개미들이 나에게 해를 끼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재미였다. 타인의 아픔을 느끼지 않는 악락함이 포조에게 보인다. 그 악랄함이 어린 나에게도 있었다.

<독서스텔라>에서는 고도를 죽음으로 단정하지 않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 무언가에 대한 절절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의 삶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도가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의견을 나누는데 재미있었다. 나는 삶을 어둡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다가 반영론적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다보니 고도를 죽음으로 인식했었다. 의지적이고 밝게 내 삶의 고도를 생각해보면 팽숙님의 의견과 같다. 독서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 내 삶의 고도는 삶의 이유, 즉 삶의 목적이다. 나도 ‘이제는 답이 없는 것을 알고 있고 답을 찾는 과정이 내 인생이구나.’라고 받아들인다. 이런 의미에서 내 삶의 고도는 나에게 오지 않아 슬픈듯하지만 오지 않을 걸 알기에 또 슬프지만은 않다.

작품 중간 중간에 보면 이제 안 볼 거라며 말다툼하는 똑같은 듯 다른 두 주인공이 껴안는 장면이 더러 나온다. 50년을 함께 고도를 기다리며 기다려온 두 주인공의 껴안음을 통해 힘들고 지루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 미력하나마 동료, 반려자가 필요함을 느낀다.


세상은 함께 사는 곳이다. 그래서 슬픈듯하지만 또 슬프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