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사실 속 단상

[과거투자광풍에서 배우기]:Ⅰ. 미시시피 계획(Compagnie du Mississippi)

olivi 2021. 6. 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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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미시시피 계획은 영국의 남해 거품 사건과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과 함께 "근대 유럽의 3대 버블" 경제의 비유로 알려져있다. 그 중 최초의 버블이라 불리는 미시시피 계획에 대해 그 창시자인 존 로(John Law)의 삶을 통해 알아보자.

 

 

/어린 시절/

1671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존 로는 14세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하는 금융업에 뛰어들어 금융의 원리를 배우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사업에 등을 돌리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든다. 영국 런던에서 9년 동안 도박판에 빠져 무절제한 삶을 살다가 그곳에서 엘리자베스 빌리어스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놓고 에드워드 윌슨과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 결투에서 윌슨을 죽인 로는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러나 탈옥에 성공한 그는 14년 간 유럽대륙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존 로 초상화 <대중의 미망과 광기> p.14

 

 

 

/유럽대륙을 전전하며 배운 것/

그와중에 유럽 각국의 무역과 자원의 현황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지폐의 발행과 유통 없이는 어느 나라도 경제적으로 번영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프랑스 루이 14세와 이탈리아 사보이 공작에게 금융개혁방안을 제안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시 그가 프랑스로 건너갔을 때의 프랑스는 루이14세가 죽고 루이 15세가 7살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라 오를레앙 공작이 섭정을 맡고 있던 시기였다. 이 때, 로는 오를레앙 공작에게 프랑스 재정 파탄의 원인이 '통화의 부족'이라고 지적하며 국고수입을 관리할 은행의 설립그 은행을 통한 지폐의 발행을 주장했다. 주화는 상업국가에 적절하지 않다며 지폐 유통의 유리한 점을 역설했다.

 

/그의 금융개혁방안이 받아들여지다/

그리하여 1716년 5월 5일 존 로가 제안한 은행 설립을 허가한다는 칙령이 발표됐고, 이제 조세는 모두 이 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로 납부돼야 했다. -> 발행되는 지폐는 유통되는 주화와 얼마든지 교환 할 수 있었고 이로써 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는 귀금속보다 더 가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금속으로 만든 주화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 받았다. -> 그 덕에 상공업이 활기를 띠게 됐고, 정부의 조세 수입 또한 늘어났다. 1년 만에 은행 지폐는 15퍼센트의 프리미엄을 갖게 됐고 반면 국채는 78.5퍼센트가 할인된 가격에 거래됐다.

 

/미시시피 계획/

이 때 존 로는 오를레앙 공작에게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미 미시시피 강 유역에 무역 독점권을 가진 회사를 설립하자고 제안한다. 이게 바로 미시시피 계획(미시시피 회사)인 것이다. 1717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미시시피 강 유역의 귀금속 채굴을 독점하고 그 이윤을 바탕으로 주화와 지폐도 발행했다. 뿐만 아니라 오를레앙 공작에게 로는 특권을 잇달아 받았다. 그의 은행은 담배 판매금, 은 가공도 독점하게 됐다.

 

성공에 도취된 로와 오를레앙 공작은 은행이 지불능력 이상으로 지폐를 발행하면 안된다는 철칙을 잊어버린다. 로의 은행이 왕립은행이 된 뒤(왕립은행이 존 로의 소유가 됨) 공작은 10억 리브르나 되는 지폐를 발행하게 했다. 이는 프랑스를 곤란에 빠지게 할 만한 물량이었고 은행이 그만큼의 지불능력이 없는 것은 분명했다.

 

 

/존 로를 막았던 사람들/

존 로를 막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프랑스 파리의 고등법원과 대법관 다게소는 외국인이 막대한 권한을 갖는 데 대해 불만을 품었고 지폐의 남발에 반대하며 로를 법정에 세워 유죄판결이 나면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놀란 존 로는 궁전으로 도피하고, 공작은 우여곡절 끝에 고등법원 의장을 포함한 그 구성원 3명을 투옥시키며 마무리 했다.

 

 

오를레앙 공작 <대중의 미망과 광기> p.16

 

 

/대중들의 투기/

로가 미시시피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한 뒤에 프랑스 정부는 북아메리카와 서인도 제도와의 25년간의 무역독점권을 로에게 주었고, 1917년 초에는 동인도와 중국, 기타 프랑스 무역회사를 합병하여 회사이름을 '인도회사'로 바꿨다. 로는 연 120퍼센트의 수익률을 약속했고 대중은 열광했다. 투자 신청서가 30만 건 넘게 들어왔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미시시피회사의 주식과 채권에 투자했다. 심지어 로가 사는 지역의 주택 임대료도 폭등했다.

 

로는 미시시피강 유역의 루이지애나의 부를 교묘한 마케팅 전략을 이용해 선전했다. 그 결과 1719년 인도회사 주식에 대한 광풍이 불어닥쳤고, 투기 사고가 발생, 주가는 500리브르에서 1만 5천 리브르까지 치솟았다. 대중의 불신이 폭발하면 로의 체제는 무너질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붕괴 경고/

1720년 초 로에게서 원하는 주식 구입을 거절당한 공티 대공이 대량의 지폐를 가지고 와서 주화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처음의 경고였다.이에 대한 로의 불평을 받아들인 오를레앙 공작이 콩티 대공에게 가져간 주화의 2/3는 은행에 다시 예치하라고 했으나 그럼에도 콩티 대공의 행동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눈치 빠른 몇몇 사람들은 조금씩 지폐를 주화로 바꿔 외국으로 보내거나 보석을 사서 몰래 외국으로 운반했다.

 

/정부의 정책/

그러자 차츰 주화가 부족하게 되었고 정부는 주화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정책을 펼쳤다. 5퍼센트에서 시작하여, 10퍼센트 평가절하 폭을 넓히다가 1720년 2월에는 주화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과감한 정책을 펴치다가 혁명을 맞이 할 뻔 하기도 했다. 보석이나 귀금속 원석을 매점하는 것도 금지됐는데 그런 위반 사실을 고발한 사람에게는 매점 적발 금액의 50퍼센트가 지급된다고 규정되어있었다. 전국은 고발자 보상을 내세운 강압 조치로 피해자가 속출했고 오를레앙 공작과 존 로를 비난하는 대중의 목소리도 커졌다.

 

끝내 미시시피회사 주식의 가치는 급속히 떨어졌고 오를레앙 공작은 나라를 곤경에서 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으나 그가 채택한 조치들은 나라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갔다.

 

/프랑스를 떠나는 존 로/

절망과 목숨마저 위태로워진 존 로는 프랑스를 떠나기로 한다. 로는 도박꾼으로 일생을 보냈지만 재정적으로 파탄 난 프랑스의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아 부자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가 당시 축적한 재산을 프랑스 안에 있는 토지와 부동산을 구입하는 데에만 사용한 것은 그의 계획을 스스로 믿었음을 의미한다. 프랑스를 떠날 때는 그는 거의 무일푼이었다.

 

그는 도박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도박빚에 몰린 그는 윌슨을 죽인 죄를 사면받고 영국으로 돌아가 4년을 지낸 뒤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1729년에 생을 마감했다.

 

 

위 글은 찰스 맥케이의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의 내용 중 1장 '미시시피 계획'과 '위키백과'를 참고하여 요약한 글입니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

저자 찰스 맥케이

출판 필맥

발매 2018.06.15.

* 미망(迷妄):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또는 그런 상태.
* 광기(狂氣) 미칠 듯한 기미, 미친 듯이 날뛰는 기질
-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당시의 정부가 왕의 명령이면 무조건 법이 되는 전제군주제였다는 점이 지금과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지폐는 오늘날의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에 상당히 비견할 만하다. 지금 당신의 자산 투자를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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